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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부상으로 SK에서 방출된 킹엄, 한화와 재계약하며 KBO 복귀

[케이비리포트]

▲  한화와 계약하며 KBO 복귀에 성공한 킹엄
ⓒ 킹엄 SNS

2020년 최하위로 추락한 한화 이글스가 2021시즌을 함께할 외국인 투수로 닉 킹엄과 라이언 카펜터를 영입했다. 새 시즌을 함께할 사령탑으로 구단 최초 외국인 감독인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영입한 데 이어 발빠른 스토브리그 행보를 보이고 있다.파워볼엔트리

이번에 영입한 두 외국인 투수 중 킹엄은 지난 2020시즌 SK 와이번스에서 방출된 바로 그 투수다. 재계약에 실패한 외국인 선수가 KBO리그로 복귀하는 경우는 보통 한 시즌 정도 준수한 성적을 남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올시즌 두산 베어스에서 20승 투수로 거듭난 라울 알칸타라 역시 지난해 kt 위즈에서 이미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검증이 된 투수였다.

하지만, 킹엄의 경우는 다르다. 2020시즌에 단 2경기에 등판해 10.2이닝 6.7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것이 전부였다. 공교롭게도 킹엄은 2020시즌 개막전에 한화를 상대로 등판한 기억이 있다.

당시 맞대결 상대였던 서폴드의 완봉 역투에 묻혀 패전을 떠안기는 했지만, 7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팀 1선발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시즌 2번째로 등판한 5월 12일 LG전에서는 3.2이닝 8실점(5자책)으로 무너지며, 강판을 당했다.※ 킹엄의 2020시즌 주요 기록

▲  킹엄의 2020시즌 주요 기록(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케이비리포트

그리고 그 경기가 킹엄의 올해 마지막 등판이었다. 경기 도중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온 킹엄은 이후에도 팔꿈치 통증이 계속되며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부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기약없는 재활이 이어졌다. 결국, SK는 7월 킹엄의 방출을 결정하고, 킹엄 대신 대체 외국인 타자 화이트를 영입했다.

이렇듯, 킹엄은 SK에서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이지 못하고 부상으로 방출됐던 투수다. 그렇다면 올시즌 최하위로 추락하며 새 판을 짜고 있는 한화가 이런 킹엄을 영입한 이유는 무엇일까?파워볼실시간

SK를 떠난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킹엄의 현재 몸 상태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비시즌 불펜 피칭에서도 150km/h에 육박하는 구속을 보일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킹엄은 건강함만 보장이 된다면 에이스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수다. 150km/h가 넘는 속구 구속과 함께 다양한 구종을 안정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2m 가까운 신장(196cm)에서 내리꽂는 듯한 투구는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두산 플렉센과 흡사하다. 총액 55만 달러에 계약을 했지만, 건강 문제만 없다면 100만 달러급 가치를 할 수 있는 외국인 투수를 한화는 절반의 비용으로 영입했다고 볼 수도 있다.

▲  2020시즌 초반 부상으로 2경기 등판 후 SK에서 방출된 킹엄
ⓒ SK 와이번스

재활을 마친 킹엄이 2021시즌 부상없이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준다면, SK에서 미운 오리였던 킹엄이 한화의 백조로 거듭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난해 이후 한화 에이스였던 서폴드는 시즌 중반 이후 구위가 떨어져 위압감을 보이지 못했고 기대가 컸던 좌완 채드벨도 부상과 부진으로 단 2승에 그쳐 방출되고 말았다. 2020시즌 외국인 투수가 부진하며 최하위로 추락했던 한화가 2021시즌에는 외국인 투수 덕을 볼 수 있을까? KBO리그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은 킹엄의 건강이 관건이다.

[관련 기사] ‘외인 감독’ 승부수 한화, 10년차 하주석이 중심 잡을까?

[기록 참조: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덧붙이는 글 | (글: 이정민 / 김정학 기자) 기사 문의 및 스포츠 필진·웹툰작가 지원하기[ kbr@kbreport.com ]

-안지훈, 몸의 일부분 떨리는 ‘본태 성진전증’ 이겨내고 8년째 당구 선수 활약 중  -“당구 선수에게 몸이 떨린다는 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몸 떨림은 참을 수 있었지만, 당구를 멀리하는 일은 참을 수 없었다”-“한때는 20대를 당구장에서만 보낸 걸 후회. 지금은 활짝 웃으며 당구 하는 백발노인 꿈꾼다”

안지훈은 본태성 진전증으로 당구 선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쉬어야 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안지훈은 본태성 진전증으로 당구 선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쉬어야 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일산] 본태성 진전증. 특별한 원인 없이 몸의 일부분이 떨리는 증상이다.   당구 선수 안지훈(40·국내 7위)은 2005년 제1회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전국의 강호를 꺾고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구 선수의 길로 들어선 지 5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빛나는 미래를 예고했던 안지훈의 성장을 가로막은 건 본태성 진전증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부터 큐대만 잡으면 머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일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졌다. 2009년부턴 더는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당구 열정엔 변함이 없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20대를 당구장에서만 보낸 안지훈은 은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안지훈은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표현했다.  “20살 때 당구를 시작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우뚝 서야 한다는 생각만 했죠. 대회마다 큰 부담감을 느꼈죠. 당구를 누구보다 좋아한다고 자부했지만 즐기지 못했던 거예요. 그런 나날이 이어지면서 머리가 떨리기 시작했죠. 이 역시 극복해야 최고가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네, 제 오산이었습니다. 상태가 더 악화했어요.” 안지훈의 회상이다.   당구계를 떠난 지 1년 8개월. 안지훈은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당구계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본태성 진전증을 떨쳐낸 건 아니다. 본태성 진전증은 완치가 어렵다. 하지만, 안지훈은 복귀 후 8년째 선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8월 21일엔 ‘2020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당구계 떠오르는 샛별로 이름을 알린 2005년 이후 첫 우승이었다.  안지훈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평생 당구와 함께 하는 게 꿈”이라고 강조했다. 엠스플뉴스가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 출전하고 있는 안지훈을 만났다.  – 2005년 당구계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안지훈 “본태성 진전증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실시간파워볼

8월 21일 15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안지훈(사진=엠스플뉴스)
8월 21일 15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안지훈(사진=엠스플뉴스)

8월 21일 당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경상남도 고성군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2020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 3쿠션 남자 일반부 정상에 올랐습니다. 2005년 제1회 대한체육회장배 우승 이후 15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대회였어요.  여러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2000년 대전당구연맹에 선수등록을 하면서 당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5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오르며 두각을 나타냈죠. 당구에 미친 시기였어요. 365일 당구장에서 살았습니다. 한국 최고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죠. 그렇게 꽃이 필 무렵 시련이 들이닥쳤어요. 시련이요?  2008년 본태성 진전증이 찾아왔습니다. 본태성 진전증이란 특별한 원인 없이 몸의 일부분이 떨리는 증상이에요.  아.  본태성 진전증이 갑자기 찾아온 건 아니었습니다. 2003년부터 증상이 있었어요. 주변에서 당구 칠 때 머리가 떨린다는 얘길 했습니다. 당시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방송으로 제 경기 영상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넘길 일이 아니’란 걸 말이죠.  어떻게 했습니까.  제 경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습니다. 머리가 계속 떨리는 걸 확인했죠. 첫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이후였습니다.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가봤어요. 20만 명 가운데 1명꼴로 나타나는 머리 떨림 증상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죠. 뚜렷한 원인이 없다고 하니 미칠 것 같았습니다. 2009년엔 증상이 심해져서 당구를 그만둘 정도였죠.  어느 정도였던 겁니까.  재미난 게 뭔지 아세요? 큐대만 잡으면 본태성 진전증을 보인다는 겁니다. 쉽게 설명하면 긴장성 장애예요. 특정한 일을 할 때 증상이 나타나는 거죠. 밥을 먹거나 필기를 할 땐 머리가 떨리는 현상이 없습니다. 최고의 당구 선수를 꿈꾼 제게 본태성 진전증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어요. 당구를 칠 때만 본태성 진전증을 보인 이유가 있습니까.  당구에 대한 집념이 강했어요. 어떻게든 최고로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20대를 보냈죠. 성적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성적에 대한 부담이 어느 정도로 컸던 겁니까.  15살 때 큐대를 처음 잡았습니다. 재능이 있었어요.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동네 당구장에 적수가 없을 정도였죠. 하지만, 당구 선수를 꿈꾸진 않았어요. 학창 시절엔 당구를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구를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운동을 곧잘 했어요. 중학교 때까진 육상부 생활을 했죠. 고교 시절엔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는 유도 유망주였습니다. 스포츠는 땀을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당구는 운동을 마치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로 봤어요. 당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20살 때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20년을 살면서 당구만큼 재능을 보인 게 없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당구 선수들이 치는 걸 보고 바로 따라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죠. 머릿속에 생각한 대로 플레이했어요. 무엇보다 당구에 집중할 때 행복했습니다.  그런 당구를 2009년 그만뒀습니다.  방법이 없었어요. 당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습니다. 당구를 그만두고 1년 8개월간 당구장을 한 번도 안 갔어요.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당구가 생각났지만 꾹 참았습니다. 당구장에 가는 순간 더 큰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란 걸 안 거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본태성 진전증보다 힘든 건 큐대를 잡지 못하는 현실” –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 참여하고 있는 안지훈(사진=엠스플뉴스)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 참여하고 있는 안지훈(사진=엠스플뉴스)

20살 때부터 당구 선수로 살았습니다. 당구를 그만두고 나선 새 직업을 찾은 겁니까.  20년 전 당구가 좋아서 선수의 삶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어요. 당구 선수만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직업이 필요했죠. 일찍부터 개인 사업을 했어요. 당구 관련 일은 아닙니다. 당구를 관둔 후엔 그 일에 집중했어요. 몸이 힘들어야 당구 생각이 안 날 것 같아서 미친 듯이 일만 했죠(웃음).  결국엔 당구계로 돌아왔습니다.  죽을힘을 다해서 당구를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취미로 당구를 즐기자고 수천 번 다짐했어요. 하지만, 당구를 잊을 수 없습니다. 큐대를 놓은 지 1년 8개월이 지났을 때였어요. 미친 듯이 당구가 하고 싶었습니다. 당장 당구를 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죠. 마음속으로 딱 한 번만 치기로 약속한 뒤 당구장으로 향했습니다.  1년 8개월 만에 큐대를 다시 잡았습니다. 당시 감정을 기억합니까.  공사장에서 막대기 하나 주워다가 공을 치는 것 같았어요(웃음). 실력이 예전 같지 않았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당구를 다시 시작해 볼까. 당구대 앞에서 심장이 뛰는 걸 느낀 겁니다. 잘하고 못 하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매일 설레는 일을 하고 싶었죠. 마음 한쪽에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업에만 충실하면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이 없었습니다. 당구 선수로 살 때처럼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 수 있었죠. 본태성 진전증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고요. 한 달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죠.  선수 복귀를 결심한 거군요.  일을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었습니다. 도착해보니 당구장이었죠. 한 번 두 번 당구를 하다 보니 다신 큐대를 놓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꽉 잡았죠. 31살에 당구 선수로 복귀했습니다.  본태성 진전증은 완치가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당구를 다시 시작하면서 다짐한 게 있어요. 성적 욕심내지 말고 당구를 치자. 당구 칠 때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러나 당구는 스포츠입니다. 경쟁을 피할 수 없죠. 대회에 출전하니 바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어찌했습니까.  이전처럼 증상이 심해지면 어쩌나 걱정했죠. 힘겹게 선수로 복귀했습니다. 당구를 평생 칠 수 없을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내게 이야기했어요. 성적과 관계없이 당구를 즐기자. 목표는 우승이 아니다.  목표는 우승이 아니다? 평생 큐대를 놓지 않는 게 꿈이에요. 당구하면서 웃는 것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 증상이 많이 나아졌어요. 2012년부터 지금까지 당구 선수 생활을 이어온 겁니다. 지금은 어떤 대회에 출전하든 마음이 편해요.  마음이 편하다? 결과가 중요하지 않으니깐. 꾸준히 연습하면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할 수 있는 게 당구라고 믿었습니다.  ‘2020 경남고성군수배 전국당구선수권대회’ 우승이 값진 이유가 여기에 있네요.  본태성 진전증을 보인 후 첫 우승이었습니다. 정상을 목표로 달려온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더 값졌죠. 대회 내내 마음이 아주 평온했어요. 어떤 선수와 대결하든 내 플레이에만 집중했죠. ‘여기서 떨어지면 어때. 마음껏 즐기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창문으로 푸른 바다를 보며 여유를 만끽하는 느낌이었어요. 우승을 확정한 후에도 무덤덤했습니다.  무덤덤했다?  평소처럼 욕심내지 않고 당구를 즐겼습니다. 우승에 욕심을 냈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예요. 본태성  진전증이 다시 심해졌을지도 모릅니다.  전국대회 우승은 준비 없이 불가능합니다.  당구를 즐긴다고 해서 준비를 안 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대회 우승 후 올 한 해를 돌아봤습니다. 꾸준했어요. 대회가 있든 없든 하루 6시간씩 규칙적인 연습을 이어갔죠, 이런 과정이 하나둘 쌓여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요.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평생 당구와 함께 하고 싶어요” –

안지훈(사진 맨 오른쪽)은 당구할 때 가장 많이 웃고 행복감을 느끼는 선수다(사진=엠스플뉴스)
안지훈(사진 맨 오른쪽)은 당구할 때 가장 많이 웃고 행복감을 느끼는 선수다(사진=엠스플뉴스)

당구가 왜 좋습니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습니까(웃음). 그냥 좋아요. 다른 스포츠에서 느낄 수 없는 당구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당구는 치면 칠수록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죠. 청소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스포츠예요.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당구는 청소년들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줍니다. 집중력 향상과 차분함을 기르는 데 이만한 스포츠가 없죠. 처음엔 포켓볼로 시작해 3쿠션으로 넘어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웃음). 3쿠션은 실력을 키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포켓볼은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밌어요. 가족, 친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하고요. 본태성 진전증을 이겨내고 당구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힘들 땐 없습니까.  없다면 거짓말이죠(웃음). 지쳤다고 판단이 서면 나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집에서 생각에 잠기죠.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겁니다. 그렇게 재충전을 마치면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시대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2개 이상 하는 청년이 수두룩합니다. 그 청년들은 공부도 소홀하지 않죠. 제가 당구 선수로 살면서 후회하는 게 딱 하나 있어요.  어떤? 20대 안지훈은 당구로 가득해요. 당구장에서 살았습니다. 지치고 힘들 땐 채찍을 들었어요. 내게 말했죠. ‘지금 쉬면 경쟁자보다 뒤처질 수 있다’고. 10년간 친구도 만나지 않았어요.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이 삶이 평생 완치될 수 없는 병을 불러왔어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경험하게 했죠. 땀 흘리고 나아가는 것만큼 휴식도 중요합니다.  안지훈의 인생에서 당구는 어떤 존재입니까.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죠. 지금처럼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하게 당구와 함께 하고 싶어요. 활짝 웃으며 당구 치는 백발노인을 꿈꿉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 MBC PLUS. All Rights Reserved.

▲ '코리안좀비' 정찬성이 페더급 최고 신성을 호출했다.
▲ ‘코리안좀비’ 정찬성이 페더급 최고 신성을 호출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기지개를 켰다.

부활을 노리는 정찬성(33, 코리안좀비MMA)이 다음 희망 상대를 입에 올렸다.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29, 러시아)를 원한다. 페더급 3위 파이터를 잡고 다시 타이틀 전선에 뛰어들고 싶다”며 강한 출전 의지를 내비쳤다.

정찬성은 2일(한국 시간) 미국 종합격투기 뉴스 사이트 ‘MMA 정키’ 인터뷰에서 “자빗과 붙고 싶다. 그를 잡고 타이틀 샷에 다시 가까이 다가서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페더급에서 가장 ‘핫’한 파이터 중 한 명과 싸워 스스로를 재증명하고 싶다. 내가 여전히 최고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임을 보이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빗은 현재 UFC 6연승 포함, 14연승을 질주 중인 페더급 최고 신성이다. 2013년 9월부터 7년 넘게 진 적이 없다.

화끈한 파이팅 스타일을 자랑한다. 옥타곤 6경기 가운데 4경기에서 보너스를 챙겼다. 전적 관리와 팬들 기대 모두를 만족시킬 줄 아는 파이터다. 총 전적은 18승 1패.

▲ 지난 10월 뼈아픈 판정패를 맛본 정찬성(맨 오른쪽)
▲ 지난 10월 뼈아픈 판정패를 맛본 정찬성(맨 오른쪽)

정찬성은 “좀비와 자빗 맞대결은 팬들을 일으켜 세울 싸움”이라면서 “우린 둘 다 엔터테이너 기질이 다분하고 파이터로서 경쟁력도 높다. 내 생각엔 자빗 역시 나와 옥타곤에 오르고 싶어 근질근질하지 않을까”라며 씩 웃었다.

“장담하건데 놀라운 경기가 될 것이다. 승리하는 쪽은 커리어적으로도 의미가 상당할 테고. 이제 공은 자빗에게 넘어갔다. 2021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자빗은 현재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해 11월 캘빈 케이터(32, 미국)를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은 뒤 소식이 없다.

지난 8월 UFC 파이트 나이트 175에서 야이르 로드리게스(28, 멕시코)와 맞붙을 예정이었다. 하나 야이르 부상 낙마로 어그러졌다. 정찬성 말마따나 자빗은 지금 ‘몸이 달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UFC 페더급 파이터에게 자빗은 기피 대상 1순위로 꼽힌다. 페더급 안에선 거인에 가까운 신체조건(키 187cm 리치 186cm)과 강력한 킥 빼어난 레슬링을 두루 지녔다.

타격전을 벌이다 기습적인 태클로 이어 가는 과정이 일품이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다. “타격을 갖춘 키 큰 하빕”이란 호평까지 나올 정도.

5라운드를 치른 경험이 없어 체력이 약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웰라운드 파이터로서 기량은 ‘대권 후보’로 꼽히기에 손색없다는 평이다.

▲ UFC 페더급 최고 샛별로 꼽히는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
▲ UFC 페더급 최고 샛별로 꼽히는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

자빗도 과거 정찬성과 만남을 희망한 바 있다. 지난 2월 러시아 매체 ‘RT 스포츠’ 인터뷰에서 “파이터로서 코좀을 좋아한다.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그와 스탠딩 타격전을 벌인다면 매우 흥미로운 싸움이 될 것”이라며 맞대결을 바랐다.

MMA 정키는 “두 달 전 브라이언 오르테가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한 정찬성이 재기 첫걸음을 뗐다. 몸 상태는 거의 100% 회복했다. 다음 상대가 누가 됐든 스케줄이 확정나면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파이트레디’ 체육관으로 건너가 캠프를 차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영국 국립축구박물관에 전시된 마라도나의 1986년 멕시코월드컵 유니폼. AP=연합뉴스
영국 국립축구박물관에 전시된 마라도나의 1986년 멕시코월드컵 유니폼. AP=연합뉴스


사망한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유니폼을 소유한 영국의 전 축구선수가 유니폼을 팔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미드필더였던 스티브 호지(58)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유니폼은) 판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호지는 ‘마라도나 유니폼의 사나이’로 불린다.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를 2-1로 꺾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경기 후 호지는 마라도나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당시 마라도나의 손을 맞고 들어간 ‘신의 손’ 골 당시 골키퍼에게 백패스를 하려다 마라도나에게 득점 찬스를 준 선수도 바로 호지였다.

지난달 25일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 호지가 등번호 10번이 적힌 마라도나의 유니폼을 팔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어 유니폼 가치가200만 달러(약 22억원)에 달한다는 추정도 이어졌다.

그러나 호지는 이날 BBC 인터뷰에서 “34년 동안 유니폼을 소유하면서 한 번도 팔려고 한 적이 없다”며 “유니폼을 가졌다는 것이 좋다. 감정적인 가치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집 문을 두드리고 모든 방송사가 계속 전화한다”며 “내가 100만∼200만 달러를 받으려 한다는 말도 나왔다.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무례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마라도나의 유니폼은 현재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국립축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호지는 “난 당시 핸드볼을 이유로 마라도나를 비난한 적인 단 한 번도 없다”며 “공격수들은 보통 덩치 큰 골키퍼와 마주하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에 속도를 늦추는데 마라도나는 그러지 않았다. 사자처럼 용맹했다”고 회고했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이동욱 감독·박민우가 말하는 NC

프로야구 NC의 창단 첫 우승은 ‘리니지 집행검’으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MLB닷컴 등 해외 언론이 일제히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트로피”라고 극찬했다. NC 내야수 박민우(27)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제 아이디어입니다! 퍼뜩 생각난 순간부터 ‘이건 대박이야’ 직감했어요. 앞으로 NC 왕조를 상징할 검이죠.” 이동욱(46) NC 감독도 가만 있지 않았다. “내 지분도 있어. 너희가 홈런 치면 더그아웃에서 칼 뽑는 동작으로 한다는 걸 내가 우승 세리머니로 하자고 조언했잖아.” 박민우가 말을 이었다. “구단주님께서 ‘집행검 보너스’를 주시리라 내심 기대하고 있습니다. 회사 게임을 널리 알렸으니 리니지 CF 모델로 써주시지 않으실까요?”

프로야구 NC의 이동욱(왼쪽) 감독과 박민우가 28일 창원NC파크에서 종이로 만든‘집행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이 검은 엔씨소프트 임직원들이 한국시리즈 기간에 썼던 응원 도구다. 2011년 창단 첫 훈련장에서 만나 동고동락했던 두 남자는“KBO리그 9번째로 탄생한 우리 팀이 9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다니 꿈같다”고 했다. 사진 촬영 때만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김동환 기자
프로야구 NC의 이동욱(왼쪽) 감독과 박민우가 28일 창원NC파크에서 종이로 만든‘집행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이 검은 엔씨소프트 임직원들이 한국시리즈 기간에 썼던 응원 도구다. 2011년 창단 첫 훈련장에서 만나 동고동락했던 두 남자는“KBO리그 9번째로 탄생한 우리 팀이 9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다니 꿈같다”고 했다. 사진 촬영 때만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김동환 기자

◇”택진이 형, 리니지CF 기대합니다”

지난달 28일 NC의 온라인 우승 축하연을 앞두고 두 남자를 만났다. 9년 전 팀 창단 첫날 코치와 신인 선수로 만나 우승까지 함께 걸어 온 사이다. 한국시리즈 공식 MVP는 주장 양의지이지만, 이 감독은 “내 마음의 MVP는 민우”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박민우를 만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2011년 10월 11일 전라남도 강진 야구장에서 처음 봤어요. 저는 서른일곱 수비 코치였고, 민우는 까까머리 신인이었죠. 민우가 고교 때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고 프로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지만 보완할 게 많았습니다. 선수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밥 먹는 시간 빼고 오로지 야구만 했어요. 틈나는 대로 야구장 돌멩이 주워가면서요.”

2011년 10월 강진 야구장에서 열린 NC의 창단 첫 훈련에서 노진혁을 지도하는 이동욱 감독. 당시 수비코치였다./NC 제공
2011년 10월 강진 야구장에서 열린 NC의 창단 첫 훈련에서 노진혁을 지도하는 이동욱 감독. 당시 수비코치였다./NC 제공

박민우도 회상했다. “그때는 감독님이 젊으셔서 펑고 훈련 때 파워가 남다르셨어요. 흰머리도 별로 없었는데, 제 수비 봐주시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신 것 같아요. 그런데 강진 시절은 진짜 힘들었어요. 치킨 7마리는 시켜야 겨우 배달 오는 깡시골에서 고교 때도 안 해봤던 훈련량을 주 6일씩 소화하는데, 저는 제일 막내였으니까 형들 눈치 보며 심부름할 것도 많았거든요. 그때 같이 고생했던 (나)성범 형, (노)진혁 형, (김)진성 형, (원)종현 형 등과 통합 우승을 일궜다는 게 가슴 벅찹니다.”

2011년 10월 강진 첫 훈련에 참가한 박민우의 모습. 그는 "프로에 오면 편하게 운동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보다 더 살벌하게 훈련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NC 제공
2011년 10월 강진 첫 훈련에 참가한 박민우의 모습. 그는 “프로에 오면 편하게 운동할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보다 더 살벌하게 훈련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NC 제공

둘의 애틋한 10년 인연엔 ‘눈물의 박민우 필드’가 있다. NC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펑고를 계속 놓치는 신인 박민우를 보다 못한 이동욱 당시 수비코치가 나무가 우거진 보조 구장으로 데려갔다. 박민우는 펑펑 울면서 밤낮으로 일대일 훈련을 했다. 이 감독은 “민우 하체가 길어서 수비 자세가 뻣뻣해지기에 다리 벌리고 의자에 앉아 공 받는 특훈을 하는 등 갖은 애를 썼다”며 “국가대표 2루수로 성장한 민우가 대견하다”고 했다. 박민우는 “제 야구와 함께 울고 웃어주셨던 감독님을 ‘제2의 아버지’로 사랑한다”고 했다.

◇새 목표: 창원에서 다시 집행검 뽑기

NC는 4년 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4전 전패로 맥없이 물러났지만, 올해 그 아픔을 되갚았다. 둘은 한국시리즈 4차전 승리가 우승에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감독은 “민우가 4차전 끝나고 ‘제가 우승 감독 만들어드릴게요’ 메시지를 보내줬다”며 “선수들이 긴장해서 1~3차전엔 수비 실수도 나오고 기량 발휘를 다 못 했는데, 이후부터는 우리 리듬대로 경기를 풀었다”고 했다.

박민우는 이동욱 감독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감독님, 저 곧 서른살이에요. (노)진혁 형처럼 저도 어른으로 봐 주세요." 이동욱 감독이 답했다. "내 눈엔 아직 스무살 까까머리인데 언제 이렇게 컸니."/김동환 기자
박민우는 이동욱 감독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감독님, 저 곧 서른살이에요. (노)진혁 형처럼 저도 어른으로 봐 주세요.” 이동욱 감독이 답했다. “내 눈엔 아직 스무살 까까머리인데 언제 이렇게 컸니.”/김동환 기자

이 감독은 우승 기자회견에서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울먹거렸다. 그는 “야구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데 어머니는 항상 저를 믿고 지지하셨다. 그 사랑을 이번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고 눈물의 의미를 말했다. 그의 야구 인생은 빛보다 그림자가 익숙했다. 동아대 졸업 후 롯데(1997~2003)에서 통산 143경기 타율 0.221 5홈런 26타점을 기록하고 서른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숫자와 영어가 난무하는 야구 데이터가 낯설었지만 누구에게든 묻고 배워 데이터에 해박한 지도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격의 없는 의사소통이 NC의 최고 장점인 것 같아요. ‘집행검’ 아이디어도 구단이 무시는커녕 적극 채택해줘서 참 고맙습니다.”

박민우는 “서울로 가기 전 ‘우승 못 하면 창원 집에 안 내려온다’고 비장하게 선언했는데, 부모님이 TV로 우승 장면을 보고 한참 우셨다고 한다”며 “고교 타격상에 프로 신인왕, 골든글러브, 태극마크, 팀 우승반지까지 다 이루다니 나는 참 축복받은 야구 선수”라고 했다. “한 가지가 남았네요. ‘NC 응원석이 꽉 찬 창원 홈구장에서 우승하기’. 새로운 목표로 삼겠습니다.”

이동욱 감독과 박민우는 벌써 내년 시즌을 바라보고 있다. "올 시즌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팬들도 자주 못 만났고 우승 샴페인 샤워도 못했어요. 다시 우승해서 NC팬들과 집행검들고 기쁨을 원없이 나누고 싶습니다."/김동환 기자
이동욱 감독과 박민우는 벌써 내년 시즌을 바라보고 있다. “올 시즌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팬들도 자주 못 만났고 우승 샴페인 샤워도 못했어요. 다시 우승해서 NC팬들과 집행검들고 기쁨을 원없이 나누고 싶습니다.”/김동환 기자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 감독이 말했다. “민우야, 우승하고 숙소에서 만난 꼬마에게 네 모자 씌워줬잖아. 그 꼬마 우리 친조카다.” 박민우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이런 운명의 장난이! 그럼 감독님 모자 주시고 제 모자 돌려주세요. 저 팬들께 우승 당시 장비들 다 드려서 하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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